오타쿠. 이제는 익숙해진 이 일본단어를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부감 가득한
느낌으로 받아들인다. 아마, 일본의 퇴폐적이고 비현실적인 문화에 빠져
애니나 만화를 보는데 인생을 허비하는 컴퓨터족들을 이르는 말일 것이다.
요새에는 많이 변해 하나의 분야에 빠져들어 자신만의 영역을 중요시하는
젊은이들을 오타쿠라고 부르기도 한다. 긍정적인 시각이 반영되어 오타쿠를
'매니아'층의 기원으로 바라보고 이러한 부류를 상업적인 타겟으로 정한뒤
특성을 조사하는 등의 마케팅전략이 나오기도 했지만, 아직까지도 오타쿠란
일본에서도 현실에서 벗어나 영상매체에서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며 타인들과
접촉하려 하지 않는 이기적 성향을 지닌 세대를 이르는 의미가 더 크다.
근래에 이러한 오타쿠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며, 이들을 소재화한 드라마까지
나와서 인기를 끌었다. 이는 오타쿠를 괴상한 부류로 인식하지 않고 밝은
영역으로 끌어들였다는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원작이었던 드라마에서의
이토는 그야말로 극찬을 받으며 '정말 오타쿠아니냐'라는 의심을 사기도
했던 것이다.
아쉬운 것은, 대중들의 공감을 받아야 하는 드라마의 속성상
외면적인 면에서 부정적으로, 내면적으로는 실력이있는 인물들로 오타쿠를
형상화하고 있다. 그래서 오타쿠가 '착하고 사실 순박하다'라는 인식을 심어
놓는데는 기여했지만, 오타쿠의 이미지와 특성을 정형화해서 굳히게 했다는
빈축을 사기에도 충분하다. 주인공 역시 자신의 외모에서의 열등감이 결국
사회성 저하와 대인기피를 가져와 오타쿠가 될 수 밖에 없었음을 매회마다
다른 방식으로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못난 것들 = 오타쿠'라고 광고
하듯이 말이다.
그리고 아름답고 착한 에르메스양에게 다가가기 위해서 조금씩 변해가는
전차남의 모습을 그려지면서 결국 이 작품의 주제는 '오타쿠를 없애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이다.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다른 부류의 오타쿠
역시 '로리콤주의자들'이나 '코스프레족'으로 우스꽝스럽게 그려질 뿐이다.
이 드라마가 열풍적인 인기를 끈 것에서 나는 더이상 특별한 부류의 오타쿠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누구나 공감을 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그러한 요소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곧 일본 특유의 복잡한 개인과 집단의
문제로 들어갈 수도 있다. 타인과의 관계를 맺는 것에 자신이 없는 한 남자가
인터넷이라는 공간을 통해서 자신의 문제를 치료하고, 사회로 편입되어 들어
간다는 아름다운 논리가 엿보인다.
사실, 이것은 누구나 조율하기 힘든 부분으로서, 자신만의 세계를 가지는 것과
타인과의 함께 해 나가는 부분을 조화롭게 유지한다는 것에 관해 질문하게 된다.
난 지금 피하고 있지 않은가? 보고도 나 자신을 위해 못본 척 하지 않는가?
누군가에게 진정으로 다가가고 용기낼 수 있는가?
역으로, 겉만 오타쿠이지 사실은 누구보다 어울리고 싶어하는 사람이 아닌가?
자신의 세계를 지키고 관리해나가길 좋아하는 일본인, 그리고 현대인들에게오히려 역으로 타인과의 관계를 갈망하는 한 남자가이를 성공해 나간다는 반대의 스토리는 충분히 감동적이다.그러나 왠지 씁쓸하다. 너무 재미있어서. 가볍게 다룬 점이 조금 걸린다.이제 일본에서는 '오타쿠'라는 말이 나오면 전차남 제1화에서 나온'소심하고 용기없고 못생기고 가까지하고싶지 않은 사람'을 떠올릴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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